더 이상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불특정다수의 인정을 겨냥해서만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 그렇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주에 개강하는 과목을 위해서 Handbuch Militärischer Berufsethik(군직업윤리)를 읽는데, 핸드북의 형태다 보니 교과서의 형태가 아니고 논문집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수준이 상당히 높다. 그 중에 요헨 본Jochen Bohn이라는 뮌헨 군사대학 교수의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이 하나로 뭉쳐졌다. (아마 그를 통해서 칼 슈미트를 처음으로 접했다는 느낌이 더 크다.)
유럽의 윤리적 사유는 아직까지도 그리스도교의 막대한 지배를 받고 있다. 그들이 Sittlichkeit(도덕성)을 말할때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삶의 기본자세를 얼마나 내재화했느냐를 말한다. 그리고 하버마스가 ‚이상적인 토론문화와 권력없는 공동의 진리추구’는 그 자체로 담론적으로 메꿔질 수 없는 ‚자유를 향유하는 문화Freiheitskultur’를 기반으로 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결국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계가 그 이전에 있던 다른 어떤 것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2차적(기생적)으로만 존속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유“는 독립적으로 발생하거나 유지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Jochen Bohn의 말에 의하면 ‚모든 가치체계의 등가화Vergleichgültigung aller Wertungssysteme’로 파악되는 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오직 옛 세계에 존재하는 견고한 가치체계들을 상대화하고, 필요에 의해서는 그러한 체계들을 존재하게 해주는 국가-정치적 기반을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파괴함으로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인권“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권의 억압자들을 패퇴시켜야만 한다. Bohn교수는 개신교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서 이 부분을 이렇게 읽어낸다: „신의 대리자“로 스스로를 파악하는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은, 메시아의 재림이 실현되지 않았기 ( 또는 그것의 연기가 거듭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약속을 유토피아적으로 현실세계에 재현해야만 한다. 세계의 낙원화는 정치적/군사적/기술적/제도적/문화적 역량을 통해서 나머지 세계를 장악 및 관리하고, 또한 경계 밖에 서있는 타인을 강제로 개화(개종)시키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형태로 변천하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저자는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진다. 서구세계에서 자유주의라는 이상을 극단까지 추구한 지금, 오히려 그로 인해서 ‚자유를 향유하는 문화‘ 자체의 기반이 와해되는 상황에 있다. 모든 가치가 동등하다는 것은, 실은 아무런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화를 통한 자유주의의 실현은 옳고 그름 자체의 분별을 아예 없애버렸을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의 견고한 체계를 가진 모든 것을 ‚악’으로, 폭력적인 것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른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은, 구성원에게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견고한 가치체계에 대한 „인권전쟁“을 통해서, 실제로 모든 가치가 소멸하는 일이다. 군인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더 이상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일, 즉 지금까지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유지되고 있는 동일성마저 파괴되었을 때 (국가주의 해체담론 등), 군사적 폭력의 대상이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모든 이들“이 될 것이라는 모순적인 결과이다.
자유담론의 시초, 즉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단절은 그리스도 즉 예수의 등장이다. 기원년의 확립은, 그 전까지는 순환적이고 (따라서) 야만적으로 진행되던 세계의 흐름에 그리스도 사건을 바탕으로 취소될 수 없는 선후 관계가 부여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라는 위대한 인간은 예컨대 부처와는 다른 정치적 상황 아래에 놓여있었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체득한 바와, 그것에 도달하는 수많은 방법들에 대해 40년 가까이 설했다. 제자들은 부처 사후에도 흩어지거나, 그리스도교인들처럼 체계적 억압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수행자를 우대하는 인도의 문화적 풍토 아래에서, 방대한 양의 경전이 구전으로 전승되고 기록되었으며, 여러 종파가 해당 문화와 흐름에 맞추어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하는 풍성한 종교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 반면 예수는 그런 시대와 장소를 만나지 못했다. 로마의 압제 하에 있는 소수민족의 천민계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원시승가와 같이 안정된 수행자 단체를 설립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가르침을 남기기 위해서는 상징을 통한 소통, 시간/공간/문화의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전염력이 강력한 상징적 소통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논리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자기양여(Selbstentäußerung)의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핵심을 이룬 것은 전복의 논리인 듯 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십자가 못 박혀서도 그렇게 한 자들을 동정하라). 전복Umkehrung은 그리스어로는 Metanoia이며, 우리는 이를 회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든 „돌아섬“은 강력하고 아름답다. 이 논리는 억압 받던 자로 하여금 자신이 주인임을 깨닫게 하며, 천한 자가 자신이 귀한 자임을 알게 하고, 병든 자가 자신을 행복한 자로 파악하게 한다. 전복의 논리는 만인에게 전도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치체계를 뒤집음으로서 („부정“Negation함으로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경지를 맛보게 한다.
그리스도교는 그래서 본질적으로 보편상징을 통한 소통(Symbolisch generalisierte Kommunikation, 루만의 용어로 말하자면)이며,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드러내는 자기고백이다. 불교가 수행을 통한 종교적 경지의 획득이라면, 그리스도교는 상징소통을 통한 회개, 그리고 그를 통한 현실세계의 변화이다. 그리스도교는 실제로 로마의 귀족 문화를 몰락시켰고, 실제로 봉건제를 몰락시켰으며, 결국에는 인권과 자유를 필두로 한 현대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체계를 확립시켰다. 이 모든 것은 기원년이라는 유일무이한 상징소통-시작점으로부터 „진보“라는 잣대로 측정된다. 우리는 고통을 감소시켰으며, 우리는 억압을 해소했으며, 우리는 잔인한 자들을 학살했으며, 우리는 차별을 소멸시켰으며, 우리는 회개했다. – 우리는 낙원을 복구시키고 있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만나는 미국영화들도 그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아무튼 „세계를 구하는 서사“를 말하고 있다. 관중은 폭력과 과학기술과 압도적인 힘에 열광한다 – 그것이 ‚악’을 패퇴시키고, „자유“를 수호하며 세계를 이타적 사랑이 가득한 낙원적 상태로 복원시키는 결론으로 끝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소통력은 세속화되고 타락한 수준에서도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이는 가상의 전쟁뿐만이 아니라, 현실 전쟁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가정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처럼 전쟁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무력 행위“로 파악한다면, 결코 전쟁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실제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있을지 몰라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두 사람이 싸우는 것에 비유해서 이해하려고 하나, 실상 전쟁은 예컨대 영토라는 대상을 얻기 위해서 국가라는 두 개의 단일체가 서로 맞붙는 현상이 아니다. 전쟁윤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지금 세계에 존재하는 전쟁의 대다수가 서구세계와 나머지의 전쟁인만큼, 서구 정신을 이해해야만 한다. 전쟁을 „정치적 목적의 실현을 위한 무력 행위“라고 정의하고, „정치“라는 것을 „선과 악의 구별, 옳고 그름의 구별, 친구와 적의 구별“이라고 이해한다면, 나름대로 중립적인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적 전쟁“, 즉 미국의 중동전쟁의 경우에 많이 보이는 것처럼 „인권 전쟁“의 양상은 자기모순적이다. (여기서 자기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식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이다. 예컨대 ‚석유 때문에 전쟁하는데 인권이라는 거짓말로 덮은 것이다’라고 말하면, 사유를 진행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탈리반을 상대로 한 전쟁이 십자군 전쟁이나, 아메리카 정복전쟁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차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가?) ‚서양인’의 전쟁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그것은 몽고군이 뛰어난 군사력과 지배력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세웠던 일과는 그 정신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서양인의 전쟁은 다른 의미에서 „성전“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세속화하더라도 남김없이 이성화될 수 없는, 자신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신의 대리인“이라는 의식이라고 보인다. (맞는지 모르겠다) 형이상학적 바탕은 이제 더 이상 „발설 될 수는 없더“라도(Unaussprechlich), 여전히 유럽인의 상징적 삶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위 말한 책에서 본 교수가 보인 우려 역시, 그 상징적 기반이 점점 해체되는 과정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며, worst-case-scenario의 경우 자유가 결국 근본 없는 형식이 되었을 때 일어날 사태에 관한 것이다.
서양인의 세계가 아무튼 동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그리고 이 글 전체에서 나는 ‚서양인’을 타자로 놓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 문화의 정신성 때문일 것이다. 약 200-100년 전에 서양인의 상징적 권력은 최고점에 달했던 듯 싶으며, 그 시대의 광채를 바라본 일본인이 서양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1900년 전후의 유럽세계를 바라본 나도 서양인이 되기로 결심했었던 때가 있었다. 다만 내가 선택한, 또는 내게 다가왔던 세계는 이미 상징체계에 깊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세기말’이었으며, 다른 말로 하면 니체의 시대였다. 나의 성장환경을 고려해볼 때, 나의 정체성은 ‚서양의 문화적 역량과 자유주의를 공유하는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 정상이었겠으나, 어쩌다보니 ‚균열과 몰락에 대한 감수성을 공유하는 예술가-철학자’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 방식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문화적 견고함의 수호자를 적으로 돌리는‘ 서양문화의 야만적인 측면을 겨냥하는 것에서 ‚균열’을 사랑한다. 그런 동시에, 그러한 피상적인 정치적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전혀 건드려지지 않음에 통감하는 측면에서는 극도로 보수적이다 (이는 진영논리의 ‚보수’와는 다른 의미의 단어다.). ‚진보’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몰락’을 선호한다. 거짓보다는 몰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것은, 아예 넘어뜨려버려라“(Was schwank, soll man auch noch stoßen!) 우리는 이상향으로서 ‚고대’를 상정하고, 서양정신이 세계질서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 의지에 반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확립해버린 지금에 대한 정신적 대안으로 활용한다. 그런 동시에,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감성은 탐미적인 감수성으로 대체되어 운용된다. (그것이 임시적일지라도). 종교와 비의에 대한 깊은 동경이 있지만, 거기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자기 이해 중에는 „사유“가 핵심적인 요소로 포함된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