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2015.9.6

헬조선에 대한 담론을 읽었다.

조선의 느리고 철저한 몰락과정을 지켜본 기억은, 조선을 후진성을 상징하는 어휘로 만들었다.
조선이 일본이 되고 일본이 한국이 되는 모습을 지켜본 세대,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할아버지께서는 집에서 조선제라면 식기마저도 사용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쇠젓가락, 쇠수저가 아니라 일본식 식기로 밥을 먹을 정도로 조선은 배척되어야 할 정신적 대상이었다. 아마 그것은 그 분께서 일본 유학중에 독일 예수회를 접하고 천주교를 만났을 때부터 시작된 자기혐오와 근대화, 그리고 종교적으로 보자면 회개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겠지만 우리 집은 제사를 받들지 않고 카톨릭식 연도를 드리고, 할아버지는 한국식 결혼 풍습마저도 혐오하여 아침 7시에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올리셨다. 물론 가족을 제외하면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려는 시간 선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에 할아버지 댁의 풍경은 이상했다. 아무것도 없는 산골인데 수영장을 만들어서 거기서 수영을 하셨고, 하루 종일 맥주나 와인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그곳에서 전통문화라고 할만한 것은 (음식을 빼고는) 조금도 접하지 못했다. 제일 귀한 손님은 „공신부님“이라는 인물로, 본명이 콘라드인 독일 예수회 신부님이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셔서 자기 성을 콘라드의 „공“으로 삼은 분이셨다. 집에서 개인미사가 올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공신부님이 주관하셨을때도 있었고, 다른 은퇴하신 신부님도 계셨다. 할아버지의 서가에는 독일어,불어,영어,일본어로 된 책들이 즐비했고, 은퇴 후에도 항상 번역작업을 하고 계셨던듯 하다. 서예도 가끔 하셨는데, 아주 메마르고 강직한, 그러나 옛사람의 필적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글씨를 쓰셨다. 그리고 친가에는 음악이 없었다. 외가에서는 모두가 음악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면 외할아버지가 꼭 노래를 했는데, 친가에서는 아무도 음악을 듣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고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흥이라는게 없었다. 술을 마시면 모든 사람이 각자 쓰러져서 잠들었고, 대낮부터 집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우리같은 애들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불을 지피고 놀았다. 분명 이상하지만 아름다웠다. 오래된 가구들의 냄새가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은퇴 후에 세운 나라는 이국적이었고, 전원 주택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 최초로 시골에 지어진 서양식 조립주택이었다. 그곳은 할아버지의 영역이었다. 우리나라의 후진성을 혐오하셨고, 대학정치에서도 너무 강직하기만 하셔서 세력도, 학파도 형성하지 못하시고 은퇴하신 후에 세운 괴상하고 낡은 왕국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學而時習“ 네 글자를 한문으로 써서 남겨주시고, 치매가 심하시던 말년에 내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말을 겨우 이해하고 아퀴나스에 대한 불란서 연구서적을 찾아서 쥐어주셨다. 나는 결코 읽지 못하는 책이다. 그분이 지은 내 이름의 述은 어디서 왔을까. 공자가 전대의 자료를 집대성했을뿐 스스로 창작하지 않았다는 „述而不作“에서 왔을까봐 겁이 난다. 짓지 않고 썼을 뿐이다. 스스로 감히 짓지 못하니 옮겨 쓴다. 스스로 창조할 역량이 없으므로 번역에 전념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때까지는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힘을 다해라. 나는 내 이름을 이렇게 읽어야 할까봐 겁이 난다. 일본식 근대화의 프로그램이 내 이름의 작명에도 스며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비약까지 나의 사고는 단숨에 달려간다. 같이 니체를 번역하는 선생님에게 술 마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니, 作은 당신이 붓다가 된 후에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述만 하더라도 최고수준의 글쓰기인 것이라고 했다. 벽암록등 선어록에는 作家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삼성스님은 작가 선지식이었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와 같은 설두스님의 착어같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이때 作은 글이 아니라 사람(부처)을 짓는다는 뜻인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또다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상한 걱정에는 이상한 위로만이 통한다.

번역을 통한 조선 근대화는, 메이지 유신때 극단까지 밀어부쳐졌던 지적 프로그램의 복사본이다. 세계 역사상 어떤 민족, 어떤 시대도 메이지 시대의 일본만큼이나 총력을 다해 타국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식하지는 않았다. 물론 역사상 위대한 문화의 변방에 있는 나라들은 항상 나름의 번역을 통해서 중심문화를 받아들이고 변용하여 취했다. 그런식으로 고급문화는 변방으로 옮겨가며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지며, 가끔 중심문화를 앞지를 정도로 뛰어나지기도 한다. 일본은 유럽을 이식하는 길을 택했고, 또 아시아에서는 중심문화와의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기저문화권이 다른 문화권에 침식되고 침략되어서 와해되어버리는 광경을 목격했으며, 동시에 먼저 서양화전략을 취한 일본의 침략을 직접적으로 겪어야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상처는, 내가 그것을 스스로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내 안에서 고스란히 남아있다. 패권국가에 태어나지 못한 자괴감은 둘째치고, 원래부터 깊게 연결되어있던 유-불-도의 문화권과의 결속이 억지로 파괴되고, 그 결속을 스스로 버린 (그리므로 깊은 자기혐오에 빠져있던) 전향국가의 영향 아래에서 그리스도교-과학문명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던 역사는 이 문화를 거의 산산조각냈으니, 그 상처는 아직도 내 안에 강력하게 남아있다. 그 상처는 이 나라 전체에 아주 깊게 남아있다. 나와 같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된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보내고나면, 그 상처가 개인의 내부에 있다고 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 상처가 사회에 있다고 볼 것이다. 내 안의 언어적 균열과 전통에 대한 절망은, 많은 이들이 말하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그 뿌리가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변혁이나 실천적 운동에 잘 동감하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지만 (즉 감성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아픔에 대한 감각은 공유하며, 그런 면에서는 진보적이다. 내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조선인이 현대인이 되면서 만들어지고 유전된 아픔이다.

현대인이라는 현실은 사실 누구에게나 아픔이나, 단지 중심문명권에 있는 자는 지배구조 내부의 위상에서 나오는 힘의 감각 탓에 이를 잘 볼수가 없었다. 특정시기에 중심문명의 최상위층에 속했던 인간들은, 역설적으로 그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처럼). 하지만 대중이 알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이, 되돌이킬 수 없을만큼 무너져야만 할 것이다. 내 생각에 현대 서구문명의 경우, 그토록 사막같은 마음과 문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다만 여러가지 강력한 장치들과 관성으로 인해서 유지되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런 장치와 관성이 결여된 한국사회는 (그리고 일본사회도) 더 빨리 „헬조선“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 뿐이다. 현대성이 지옥인 이유는, 그것이 그 자체로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며, 오로지 기존 문화 내에 있는 구조를 소비하고 말살하는 방식으로밖에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닫힌 계 내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평등과 자유라는 의미생산기계는, 불평등과 억압을 채석장으로 삼아 그것을 분쇄하면서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차이가 무력화되었을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은 마치 엘론 머스크가 „석유는 언젠가 당연히 바닥나게 되어있고, 그것을 사용할 수록 지구에 해를 끼치는 일이 자명한데, 왜 석유를 쓰는가?“라고 질문한 것과 비슷하다 (머스크는 물론 대단히 천박한 종류의 천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채석장으로 사용할만한 기저문화가 없는 곳에서 평등/자유의 패러다임은 제대로 작용할 수가 없다. 이슬람 문화권이나, 유교 문화권에서 이 의미(권력)생성기를 작동시키게 되면, 문화의 기저 자체가 흔들려버린다. 옳고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은 무작위에 가까운 형태로 타락한다. 이것은 평등/자유의 문화를 아주 섬세하게 조작할 수 있고, 애초부터 자신들의 문화를 이 화로에서 천천히 태워서 꾸준히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터득한 유럽문화의 경우에만 잘 작동한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에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상온 핵융합이 아니라 핵분열의 방식으로밖에 적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랍 문화권에서 얼마나 많은 진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라..

헬조선에 대한 논의가 „탈조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대단히 안타깝다. 개인적인 수준에서조차, 대책이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안타깝다. 예전에 나는 한국이 몰락하는 미래, 그리고 우리들이 단지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으로서 마치 유태인처럼 세계 곳곳을 떠도는, 한국식 디아스포라를 상상한 적이 많이 있었다. 그런 것을 비전으로 삼아야할 정도로 어두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공통언어를 유지하고 풍부하게 해줄만한 경전이 없다. 한국어로 쓰인 경전이 없는 이상, 한국식 디아스포라는 몇세대 유지되지 못할 것이고, 한국어는 달군 쇠 위의 물방울처럼 증발해버릴 것이다. 나는 그런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 내겐 이 이상하고 굴종적인 언어, 즉 번역에 특화된 언어,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는 언어, 명료하지 못하고, 그래서 지혜가 숨을 공간이 있는 언어, 이렇게 지독하고 또 유연한, 한국어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가 아무리 내 정신을 형성해주었다고 해도, 바꿀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경전이(근본이) 없는 언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헬조선 논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삶의 절망에 대한 답이 자살일 수 없는 것처럼, 물리적 자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언어적 자살,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원하는 사람들, 탈조선을 논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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