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형성 / 비트겐슈타인 번역 문제에 대한 잡상

학기 중이라는 핑계로 너무 게을러져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을 보면서 반성한다. 예를 들어 Satz를 „명제“로 할지, „문장“으로 할지 아직도 최종적으로 결심하지 못했다. 정말로 사고를 통해서 정면돌파할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까 똑바로 사고하라. <논고> 번역에서는 어차피 „명제“로 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마라. 그런 이유에 의해서 역어가 결정된다면 번역은 노예나 할 일이다. 모든 긴장과 강박을 놓아버린다고 유연한 사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눈동자에 힘이 풀리듯이, 모든 것이 초점을 벗어나버리고 만다.

MS 111에서 재밌는 구절이 발견되어서 번역해본다.

Der Jude wird in der westlichen Zivilisation immer mit Maßen gemessen, die auf ihn nicht passen. Daß die griechischen Denker weder im westlichen Sinn Philosophen, noch im westlichen Sinn Wissenschaftler waren, daß die Teilnehmer der Olympischen Spiele nicht Sportler waren und in kein westliches Fach passen, ist vielen klar. Aber den Juden geht es ebenso.

Und indem uns die Wörter unserer Sprache als die Maße schlechthin erscheinen, tun wir ihnen immer Unrecht. Und sie werden bald überschätzt bald unterschätzt. Richtig reiht daher Spengler Weininger nicht unter die westlichen Denker.

서양문명 안에서 유대인은 항상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척도로 평가받는다. 그리스의 사색가들이 서양적 의미의 철학자들도 아니었고, 서양적 의미의 과학자들도 아니었으며, 올림포스 제전의 참가자들이 스포츠 선수들이 아니었으며 어떤 서양적 범주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명료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 언어의 낱말들이 ‚척도 그 자체’로 여겨지는 현상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들을 공정하게 대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과대평가되기도 하고, 과소평가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슈펭글러가 바이닝어를 서양적 사색가로 분류하지 않는 것은 옳다.

 

바이닝어는 세기말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빈에서 Geschlecht und Charakter로 유명세를 탔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자살로 인해서, 그의 책이 유명세를 탔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바이닝어는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였고, 그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바이닝어의 사상을 처음으로 접하고 9년 동안, 그러니까 러셀에게 자신의 철학적 재능을 인정받는 순간까지 자살에 대한 생각에 몰입한다.

어떤 의미로든, ‚세기말 빈’에서 유대인으로 자라난 비트겐슈타인은 서구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유대혈통을 도구 삼아, 서구문명이라는 것을 대상화시키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서구문명은 그리스 철학의 전통과 단절되어 있다.  그 자신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과학자도, 서양적 사상가도 아니며, „스포츠“ 따위에 마음을 쏟지 않는 존재로 스스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서구문명을 단죄할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이 서 있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진정한 문제는 그의 문체에 있다. 그가 말하는 방식에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는 계시적이며, 예언자의 그것을 닮아있다. 하나의 거친 가설을 실험해보자. 그는 적어도 신의 대리인으로서 다른 사람들 앞에 서고자 한다.  그는 „받아쓰는 자“(충동적/영감적 글쓰기) 이며, 자신의 말을 기 „기억하는 자“(2차 가공이 용이하도록 분절적으로 형성된 텍스트)이며, 그런 동시에 자기 자신의 „경전 편찬자“이다.

„천재“라는 아이디어, 위대함이라는 관념은 신-예언자의 구도와 얼마나 동일한가? 만일 주체의 성립이 완결되어 일반문법에 흡수되었다면, 더 이상 그 구도가 공동체적 공간(상호주체적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내부로 옮겨졌다면, 신의 대리자는 어디를 향해서 말해야 하는가? 그의 말을 누가 옮겨적고, 누가 경전을 편찬해야 하는가?

근대의 진리탐구자는 그 스스로의 필사자이며, 어록 제조자이며, 경전 암송가이며, 성전을 출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가 미치는 영향의 범위가 고대에 비하여 너무도 협소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도 니체도 생전에 제대로 된 추종자 집단을 얻는데에 실패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경전화하려는 노력은 이들 일생의 대부분을 소비했다. 철학이 정말로 „이론이 아니라 행위“라면, 왜 글을 쓰는가? 왜 편찬하지도 못할 책을 20년 동안 고치는가? ‚아무도 위하지 않는 책’이라면, 왜 자비를 털어서 차라투스트라를 출판하는가?

경전화 작업은 진정성Authentizität과 물질성Materialität의 보존에 그 핵심이 있다. 성인의 유골을 모시려는 마음과, 성인의 말을 보존하려는 노력과, 근대 철학자를 대하는 유고문헌학의 자세는 거의 동일한 심리적 기제로 작동하는 것 같다 (물론 종교성의 측면에서는 다를 수 있으나). 단순한 진리 탐구자일뿐만 아니라 진리에 실제로 접했던 인물에 „몸소“ 닿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겐 있다.

가장 정신적인 영역에서 물질적인 증거를 보려는 욕망은 모순적이지만 또한 인간적이다. 신=진리는 근원의 공간이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존재한다. 넘을 수 없는 정신적 간극이 우리와 진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신=무한은 사유불가능하다.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은 그래서 껄끄럽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리와 하등의 관계도 없는 부수적인 물체에 우리는 집착하게 된다. 즉물적인 것, 경전의 말, 원어의 발음, 성인이 입었던 가사의 빛깔, 성인이 살던 집의 특정한 위치, 등을 통해서 우리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한다는 환상에 빠지고, 그 환상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경전의 물질적인 면, 종교적 체험의 피할 수 없이 즉물적인 속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경전번역의 경우다. 경전 번역에서 우리는 음차라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음차는 경전의 원본성/진정성을 담보하는 표식이다. 이 메시지를 역추적하면 무한함에 가닿는다는, 무한을 보증하는 유한의 증거이다. 음차는 신앙에 가까운 것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아니면, 반대로 언어에 대한 존경이 전혀 없는 경우거나) 경전의 원문을 „야훼“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같은 말로 „번역“하는 것은 예컨대 Philosophia를 „철학“으로 번역하는 메이지인의 마음과는 다르다.

나의 가설은 이렇다: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말에 경전적 성격을 부여했다면,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실제로 경전에 준하는 효과를 발하고 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번역술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되는 텍스트다. (경전은 정전과는 다르다) 계시적인 언어는 원본성/진정성의 논리를 통해서 그 힘을 발휘하기에, 그것을 제거하는 순간 빛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텍스트의 위치를 표시해주는 과감한 장치들을 의식적으로 삽입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시공을 가로지르는 진리의 문법을 구축할 수가 있다. (비의적인 텍스트는 번역 역시 비의적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소위 „학술적“ 번역은 비트겐슈타인이나 니체의 경우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학술적 번역은 필연적으로 대상 텍스트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다른 텍스트들을 버팀목으로 이용하며(그리고 <논고>의 경우에는 이런 기준 텍스트들이 꽤나 명확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선형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사의 관점에서 역어들을 위치시킨다. 그렇게 되면 대상 텍스트는 다른 모든 텍스트와 다를바 없는 보통 글의 높이로 끌어내려지고 만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에게 공정한 번역은 그가 출발했던 가장 근본적인 단서들만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학술적 논의를 거부한다는 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근본언어는 일상언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Tatsache사실이나 Satz문장같은 낱말들은 일상언어에서 나와서 철학의 영역을 건드리고, 다시 일상언어로 흡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품고 있다. 반면 „명제“라는 말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형적인 학술어이며, 전형적으로 이론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전문용어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스스로의 글이 번역되는 방식에 대해 보였던 모습들을 분석해야 잘 들어맞는 위치이지만, 현재 자료와 확신이 부족하므로 생략함]

경전번역의 문제는 확실히 인도불교가 한자문화권으로 유입되었던 과정과, 메이지시대에 서양정신이 일본어로 유입되었던 과정을 참고한다면 훨씬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경전편찬의 문제 역시 유불도의 경전형성사와 근대 이후에 대단히 잘 보존된 철학자/문학가들의 유고관리/편찬을 비교하면서 본다면 명확해 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고나면, 이 문제는 더 이상 해설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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