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조각.

누군가에게 절을 올리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지갑을 열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걷고 싶었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고 싶었다. 온 몸을 바닥에 던지고 싶었다. 예전에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지낼 때에도 나는 혼자 십자가에 대고 큰 절을 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각 종교의 비의는 대단히 신체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비의의 전승은 대단한 말이나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생각에, 가장 뿌리깊은 전도는 아마도 공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무 옆에 서 있으면 그 색깔대로 마음이 물든다. 그 줄기가 휘어진 모양이 내가 휘어진 모양이 된다. 우리들의 허리가 휘어지는 것은 나이나 병 탓이 아니라, 휘어진 것들 곁에서 우리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따뜻해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에게 절을 올리고 싶어하는 것도 공기의 탓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굽어지는 것들, 작아지는 것들, 그러나 없어지지는 않는 것들 곁에서 나는 태어났고 첫 숨을 쉬었다. 태어나기 직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절을 올리고 있었고, 단지 그것의 이름을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왼쪽 옆구리를 지상으로 향하고 무한한 물 속에 떠있었다. 한때 엘로힘의 숨결이 대지 위에 떠있었듯이. 세상에서 내가 승리하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치유적 효과를 찾아서 무작정 걷다가 보니 절이 나왔다. 그것도 두 개나. 오른편에 있는 절에 가기로 결심하고 올라갔다. 가파른 입구에는 단풍이 심각하게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공양간’이라고 써있는 가건물이 산문 밖에 있었다. 대웅전은 대단히 작았고 앞 뒤로 두 사람 정도 밖에 앉지 못하는 너비였다. 비닐장판 위에 앉은 금부처님은 표정이 닫혀있는 못생긴 모습이었다. 나를 이끌어줄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합장을 하고 반가부좌로 앉았다.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조용한 가운데 새소리가 들렸다. 절은 항상 조용하다. 침묵의 가치를 깊이 느끼게 해준다. 눈을 힐끔 뜨니 밖에서 사람들이 초록색 비닐그물에 감긴 물체에 절을 연거푸 올리고 있었다. 나가서 보니 절벽 안에 새겨넣은 부처였다. 공사중이어서 자신도 돌볼 여지가 없었을 석면불에게 사람들이 과중한 부담을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절을 하고, 돌부처는 망가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부처를 수선하고, 다시 절을 올리면서 서서히 파괴한다. 윤회다.

옆의 절은 훨씬 큰 사찰로, 옛날부터 여기에 있던 것 같았다. 올라가는 길이 대단히 가파라서 좋았다. 영웅들의 서사시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중대한 변화를 겪기 전에 반드시 고난의 길을 간다는 점이다. 중얼중얼. 불전에 공양미가 쌓여있었다. 앞에 앉은 젊은 여자, 아니 소녀라고 해도 좋을 형상이 궁금해졌다. 왜 젊은 나이에, 토요일 오후에 불전을 찾아왔을까. 순간 방석 위에 놓여있는 종이조각이 보였다. ‘고려대학교 수험표’. 아, 이렇게 범속한 아름다움이라니.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녀도 계속 절을 올리고, 선 채로 오래 동안 염원하는 모양이었다. 제단 위에 앉은 부처님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묘한 표정변화를 나는 포착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예전에 알고 지냈던 창백한 여자애 한명이 떠올랐다. 염원만으로 꽃피울 수 있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목련을 비롯해서 모두가 불전에서 나갔을 때, 나는 절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검은 표지의 ‘법요집’에 친절하게 절하는 법이 설명되어 있었다. 몸을 바닥에 던지고, 손바닥을 위로 하여 들어올리고, 일어서서 몸을 반 정도 접고, 다시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넓은 불당 안에 혼자 있는데도 대중 앞에 선 것처럼 몸이 뻣뻣했다. 삼배를 올리는 것이 한계였다.

절간 앞의 거리에는 설렁탕 집이 있었다. 허허. 솜사탕처럼 희고 젊은 비구니 한명이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허허. 붙들고 무어라도 물어보고 싶지만, 스님의 시선이 너무나 위를 향하고 있었고, 빌라들 사이를 구름 위를 걷듯이 스쳐지나가는 걸음이 너무도 불안하게 아름다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스님,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스님, 저는 기복신앙자입니까. 스님, 설렁탕 한 그릇 하시겠습니까.

설렁탕은 토렴을 해서 나오느라 오래걸렸다. 고기가 종이장처럼 얇았고 국물이 목련처럼, 솜사탕처럼 희었다.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그만, 파를 너무 많이 넣었다. 윤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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