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썼던 글이 나와서 한국어로 옮겨보았다.
독어를 너무 많이 잊어서 그런지 오히려 번역이 수월했다.
지금이라면 이런 글을 쓰지 않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Trinker
Zement musste ich trinken
für uns, einen aufrechten Gang
Auf die Wiederkehr der toten Heiligen
tranken wir, reines dunkles Lichtgewebe
jede Nacht verschlungen, gegeneinander
Glasscherben schlucktest Du,
rubinrote Werbungen,
ungläubig,
dass ich aus Blut
doch noch Beton mache?
Ungesehenes brach hervor
unter einem Nie und einem Gleich
Nacht erblich, nicht Nacht genug;
Verkohlten wir doch,
Erhärteten wir doch,
dort; im Zement, im Zement.
마시는 자들
나는 시멘트를 마셔야 했지
우리 둘을 위해, 두 다리로 걷기 위해
죽은 성자들의 귀환을 부르며
맑고 어두운 빛의 섬유를 마시고
매일 밤 휘감기고, 서로서로 삼키고
유리조각을 목넘김하던 너
루비처럼 붉은 구애였는데
믿지 않았니?
내가 피를 가지고
다시 콘크리트를 세울 거라고
미증유가 솟아올랐었지
절대,와 당장,의 사이에서
밤을 되물림하면서, 밤이 되지도 못하면서
우리 숯이 되어갔지만
우리 단단해져갔지만
거기, 시멘트 속에서, 시멘트 속에서.
그 집에서 나는 오랜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친구는 마음이 불안정한 아이인데,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철학 학위 논문에 광적으로 집착하면서 더욱 불안정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와인과 커피를 동시에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고 논문에 대한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논문이 완성될 즈음엔 거의 과대망상에 가까운 증상을 보였다. 자신의 지도교수가 악마의 현신이기 때문에,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유일한 올바른 해석인 자신의 논문은 그의 손아귀에서 말살되고 말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친구도 이게 망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라면 덫이 아닐터. 그가 그렇게 추락하고 비상하고를 반복하는 동안에, 나는 계속 옆에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이 글을 썼다. 친구는 마음에 들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