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20160714

혼자라는 말을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3년반은, 요약하자면, 혼자가 아닌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끊겨있던 모국어와의 재회였고, 언어의 중앙에 설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 하지 않았고, 멀게 느끼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배척하기도 했다. 나를 조종하려고 하거나 변화시키려고 했다. 수많은 뿌리들이 내 안을 움켜쥐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흙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비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아, 그러나.

나는 무대에 올랐다. 이것이 내 한국생활의 정점이었다. 나는 사람들 앞으로 나섰고, 강의실과 무대와 지면 상에서 말을 꺼냈다. 그것은 대화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대화가 아니었다. 나는 서서히 입에 거품을 물었다. 나는 빛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스팟라이트를 받으면, 앞의 청중석이 온통 새까매졌다. 눈이 거의 멀면서, 희미하게 사람들의 존재를 사랑으로 착각하게 되면서, 내 눈앞을 가리고 있는 빛을 내가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있지도 않은 빛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나의 내부는 텅 비어갔다. 그것은 좋은 비움이 아니었다. 먹을수록 몸이 아파지는 음식과 비슷했다.

그렇게 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얻은 것은 분명 많다. 나는 말하는 법을 배웠고, 말에 담겨있는 독기를 알아보게 되었다. 모르는 상태에서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 침묵하고 싶어졌다. 말없는 것들, 초록의 것들에 자꾸 마음이 쏠렸다. 독서보다 산책이 좋았고, 산책보다 등산이 좋았고, 등산보다 잠이 좋았다. 나는 오래동안 잠을 잃었던 사람처럼 계속 꿈 속을 헤맸다. 어떤 잠은 정말로 죽음처럼 새카맣고, 정말로 쉬게 해주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지가 않는다. „어깨에 힘을 빼고“는 단순한 관용구가 아니다.

혼자, 이제 혼자 길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예전에는 혼자이기 때문에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를 잃어보고 나니, 혼자였던 시간이 가장 길에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다. 떠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기쁘고 무섭다.

 

2 Kommentare zu „잡상 20160714

  1. 페이스북에서 링크타고 처음으로 옵니다^^;거기였다면 좋아요를 눌렀을텐데ㅎ기쁘고 무서운 그 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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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공 빛이 눈을 가리고 대기가 흔들려 흐려도 감은 눈에는 별빛이 닿이듯 참 빛은 그의 어둠만큼 밝고 그 깊이만큼 높음을 봅니다.. 길이 될 걸음들 감사함 속에 멀리서 감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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