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

올해는 이상한 해였다. 사실 올해가 한국에 „다녀온“ 시간 전체를 대표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길고 긴 시간이 하나로 쪼그라들어서 손바닥 위에 얹힌 느낌이다. 나는 시간을 꿰뚫어보지는 못하지만, 한 눈에 쥐고 쳐다볼 정도로 멀리까지 오는데는 성공했다. 그 시간의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윤곽은 이제 어슴푸레 볼 수가 있다.

2013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한국에 있었으니, 총 40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또 나라를 훌쩍 바꿨다. 마지막에는 도망치듯이, 피하듯이, 눈을 질끈 감듯이 떠났다. 견딜 수 없었다.

무엇이 견딜 수 없었을까? 군대를 싫어했지만, 그 모든 것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나를 강하게 해주었다. 서울에 질렸지만, 아직도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밤의 뒷골목을 사랑한다. 일에 눌려있었지만,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었다. 독일에 돌아오기 전 짧은 시간, 나는 쉬는 법을 잊어버려서 가장 괴로웠다. 본가에서 얹혀지내면서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매일 뒷산에 올라가는 일만 강박적으로 반복했다. 내가 암초같은 곳에 얹혀있는 것 같았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모든게 얹혀있었다.

변화의 바람이 나를 통과해가면서 몸에 상처를 남겼다. 내 몸은 열려있었고, 새로운 재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변신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아픈 일이었다. 환희는 고통과 다르지 않고, 절정은 절망과 다르지 않으며.. 모든 기억이 하나로 뭉치는 느낌이 든다. 나는 뼈를 가지고 살을 찾으면서 다녔다. 공기중에 있는 것들과, 머리로 들어오는 형상들이 새로운 몸으로 변하고 있었다고 느낀다면, 이제와서 과장일까? 나는 여타 생명처럼 숨을 쉬면서 나를 조금씩 키우고 또 줄이고 있었다. 한숨 한숨, 나를 이루고 있는 재료가 교체되고 있었고, 세상을 덮은 막의 기운이 달라지고 있었고…

건강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애썼다. 내가 지금 와서, 드디어, 일년 반만에 ‚쉬었다’라고 느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마음이 성숙하지 못해서 몸으로 보아야 하는 일은 어렵다. 또는,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이 아프기 전에 몸이 먼저 아파주는 일은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항상 먼저 보고 움직일 수가 있다.

 

어둠 속에 앉아서 빛을, 겨울을 견디며 봄을, 병 속에서 건강을 생각하는 것, 물론 철학이다. 이 세계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은 수단이 아니라는 직감, 바로 내 안에 해답이 있으며, 내가 해답을 매일매일 보고 있는데 눈치채지 못한다는 믿음이자 절망감. 시선을 안을 향해 구부리려는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에 대한 외로운 추구, 등등. 반드시 철학을 이렇게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현대에서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빠지기 쉬운 중간지점인듯 하다. 어둠 속에서 태어나서, 빛으로 나가는 법 (플라톤). 대부분의 지식과 물음에 대한 깊은 반감과,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앎을 지어야 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동정심.

스승을 가질 수 없는 시대에, 데카르트는 눈을 잃은 채 태어났고, 그래서 직접 빛을 만들어야 했다. 그에게는 전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데카르트의 생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요소처럼 보이는 신앙도 겉껍데기만 남은 추상적 구조라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데카르트가 던진 빛(Seins-entwurf)은 마찬가지로 전통적 세계관과 절단되어 장님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과학 전체가 거대한 의미생성기계로써 돌아간다 (정치 전체도 마찬가지다). 의미있는 유일한 것으로 앎을 정립하는 것,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수학을 정립하는 것. 벼랑끝에 내몰린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집이다.

한국을 떠날때쯤 – 나는 철학의 의미를 거의 잊고 있었는데 – 다시 한번 예전의 철학을 상기하고, 새롭게 정리할 기회(필요)가 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블로그에 적은 글이지만, 나는 그때 ‚모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앎이라는 황금을 발견한 사람들에 대항하여, 황폐함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이끌기 위한 새로운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모름’에 대한 생각은 어떤 방법으로 접근되어야 할까? 무언가를 알거나 전달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닐 것이다. 저항하려는 목적에서 그쳐서도 안된다. 진실한 무지, 하나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얻고 싶다.

2 Kommentare zu „한해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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