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시절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 돈 주고 샀던 첫 카메라가 올림푸스의 C-220z 였는데, 아직도 수학여행에는 일회용 카메라가 대세였던 당시에 이런 카메라는 상당히 혁신적인 물건이었다. 아버지와 형의 영향으로 나는 전자기기에 대해서만큼은 얼리어탑터였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음악기기가 워크맨도 아니고 CDP도 아닌, MPman이라는 당시 최초의 MP3플레이어였다는 사실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지금보면 우스운 물건이다. 2백만 화소에 줌은 3배, 심지어 마이크도 없어서 이 당시 촬영한 동영상은 전부 무성영화가 되어있다 (!)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전부 벙어리가 되었다.
미놀타 수동카메라로 수동의 맛을 조금 보자 본격적으로 이상한 물건이 쓰고 싶었다. 독일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이베이에서 올림푸스의 RF카메라 하나를 말그대로 공짜에 가까운 가격 (20유로도 안했던걸로 기억)에 구한다.
여러모로 내 첫번째 카메라와 닮아 있는데, 이녀석은 물론 줌따위는 안되고 무조건 35mm 화각만 된다. 한참 사진을 좋아하던 당시에는 이 소박한 사진기로 여행 다닐때도 찍고, 평소에도 찍었다. 사람들이 이 카메라의 외관을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찍은 사진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한층 자연스럽다. 늙은 신사 앞에서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적은 것처럼, 카메라의 외모는 작을 수록, 수수할 수록 좋은 듯 하다. 이때 찍던 느낌이 가장 강렬해서,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화각이 35mm가 된 듯하다. 50미리는 너무 답답하다. 줌도 싫어졌다.
그 후로도 나는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 니콘 D40이라는 방황을 잠시 했다. 돈이 없어서 결국 렌즈는 번들만 4년을 쓰다가 팔았다. 자꾸 별로 의미 없는 기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RC 35를 쓴 다음부터 내가 단순한 카메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나한테 카메라는 무조건 작고 예쁘고, 어느 시대에서 나왔는지 모를 외양을 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도 나는 구닥다리처럼 생긴 올림푸스 EM1과 수동렌즈 (…)를 쓰고 당분간 바꿀 생각이 없다.
아무튼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전혀 이런게 아니다. 이 글은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글에는 항상 쓰는 사람의 상태가 묻어나는 법이지만, 사진도 그렇다는 사실은 얼마전에 겨우 알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몇달의 내 상태를 생각해보면 그건 연기된 병 같은 것이었는데, 사진도 정확히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7월에 제주도에 갔을때 나는 아직도 휘청거리고 있었다:
실제로 풍경이 저렇게 어두웠을까? 난 이 사진들을 싫어하지 않지만, 건강의 느낌이 없다고 느낀다.
사려니 숲길 입구도 마찬가지로 어둡고 집어삼킬 것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래, 사진에 맞는 말은 기억이다. 그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을 최대한 담기 때문에, 일종의 미감적 기억매체인 것 같다.
4월 즈음에 찍었던 목련 사진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들 중 하나인데, 이것도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면이 있다.
나는 예전부터 콘트라스트가 센 사진, 심도가 얕은 사진을 좋아했다. 아마 명확하지 않으면 잘 보지 못하는 무딘 미감 때문일텐데,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번역할 때에도 중의성을 견디지 못해서, 같이 번역하는 선생님에게 너무 간결한 것을 좋아한다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한국을 떠날무렵 내가 앓고 있던 정신의 상태는 원래 가지고 있던 본성이 조금 더 과격하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한다.
독일에 돌아오자마자 찍은 사진은 아직도 이 상태에 있다. 8월 초에 찍은 사진이 한장 있다.
별 특별할 것이 없는 사진인데, 그냥 당시에 저런 식으로 하늘을 보고 빛을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허무하게 생긴 풍경이다.
그리고 흑림, 알프스의 거대한 자연에 나다니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대상이 너무 커서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딱히 „대상“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행이나 도보여행 중에 건진 사진은 그래서 거의 없다. 아래 한 장은 우연처럼 찍은 사진이다
이날 산맥, 호수, 멀리 보이는 마을 등을 담으려 한 시도는 전부 실패했는데, 장난처럼 찍은 이 사진은 마음에 든다. 사진에 오랜만에 동물이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산속에서 찍은 사진 중에 백조가 들어있는 이 사진이 기억이 남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국에서 내가 찍어야 했던 대상들에는 식물과 기계, 건물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유럽에서는 물론 동물을 만날 일이 더 많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내가 의식적으로 기억하려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어떤 치유나 회복의 과정이 이런 식으로 보관되어서, 마치 고고학자처럼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즐겁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언제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도에도 내 마음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