횔덜린의 귀향 Heimkunft

횔덜린의 시 귀향(Heimkunft)을 본다. 시작은 이렇다.
 
알프스 깊은 곳은 아직도 밤으로 빛나고
희열을 노래하는 구름은, 깊게 벌어진 골짜기를 덮는구나
Drin in den Alpen ists noch helle Nacht und die Wolke,
Freudiges dichtend, sie deckt drinnen das gähnende Tal.
 
첫 행만 읽어도 이것은 디오니소스적 혼돈과 아폴론적 꿈에 관한 시다. gähnen을 여기서 일상어 용법의 „하품“으로 읽으면 안된다. 쩍 벌어진 괴물의 아가리처럼 바닥을 알 수 없고 어두운 장소가 바로 골짜기Tal이다. 내가 유년을 보낸 곳도 흑림의 한 골짜기인데, 산이 험한 곳에서는 당연히 모든 마을이 골짜기에 형성된다. 물론 그 곳이 살기 좋아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단지 정상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기후에서 골짜기는 항상 비가 내리고, 해가 짧고, 축축한 곳이다. 우리가 삶을 시작하는 장소는 이렇게 적대적이고 우중충하지만, 가끔 산정에 오르면 골짜기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띄운 구름은 일상의 모든 구질구질함을 슬쩍 가리워버리고, 이제 머리 위로는 밤이 빛난다. 왜 낮이 아닌 밤이 빛나는가? 여기서는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너무 강렬한 태양빛을 보고 나면 치유를 위해 시야에 어두운 반점이 나타나듯이, 너무 강렬한 어둠을 보고나서 치유의 목적으로 나타난 것이 빛나는 도리스 예술“(정확한 인용은 아님..) 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밤은 빛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빛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고, 그리움의 심상은 곧 노래이며, 노래는 어둠을 가리운다…
서서히 걸음과 싸움을 시작하는, 희열로 전율하는 혼돈이여,
그 모습은 젊으나, 오히려 강인하여, 축전에서 에로스의 경쟁을 벌이고
암벽 아래서, 영원한 제약 속에서 들끓고 흔들리고 있으니,
바쿠스와 같은 아침이 그 안에서 솟아오르고 있음이다.
Langsam eilt und kämpft das freudigschauernde Chaos,
Jung an Gestalt, doch stark, feiert es liebenden Streit
Unter den Felsen, es gärt und wankt in den ewigen Schranken,
Denn bacchantischer zieht drinnen der Morgen herauf.
혼돈은 원래 장자에 나오는 말인데, 우연히도(!) Chaos와 너무 잘 맞는 번역어이다. 장자의 „혼돈“은 얼굴에 구멍이 없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 제후들이 하루에 하나씩 얼굴에 구멍을 뚫어주었더니 7일째 되는날 죽어버리고 말았다. 혼돈은 정제되지 않은 자연의 힘이며, 모든 제약과 소위 „문명“의 사슬들을 다시 끊어버릴 수 있는 힘이다. 암벽과 같은 사회와 문화의 속박이 생명을 옥죄어오고 있지만, 아침처럼 어쩔 수 없이, 가차 없이, 혼돈은 다시 솟아오른다. 2행에서 liebend를 „사랑어린“으로 번역하면 „사랑“이란 말이 현대어에서 가진 어감 탓에 망쳐버리는데, 다른 말을 찾지 못하여 아예 노골적으로 플라톤적 단어인 „에로스“를 사용해 보았다. 이 부분은 유명한 그리스빠(!)였던 횔덜린이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독일로 수입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에로스라는 말이 그렇게 빗나가지도 않는 듯 하다. 힘의 과도함, 경쟁과 싸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음, 이것을 부드러운 말인 „사랑“에 붙이기는 어렵다. 자신 아닌 것을 향해 쏟아지듯이 집중하는 힘인 „에로스“가 낫지 싶다.
알프스의 산들을 – 아래에서든 위에서든 – 바라보면 한국의 산들과는 그 안에 흐르는 에너지가 다르다. 한국의 자연은 지질학적으로도 „늙은“, 오랜 풍화를 통해 부드럽게 갈려나간 산들이라면, 알프스의 산은 지금도 융기하고 있는 „젊은“ 산이다. 이 산들은 강인하고, 아직 부러지지 않아 예리하고, 험준하고, 자비를 모르고, 낭비적으로 아름답다. 바쿠스는 이런 산들에서 태어난다. 그리스의 지중해를 잘 모르지만, 산이 물 아닌 방식으로, 역설적으로 닮아 있지 않을까? 아무튼 독일인은 자신의 축축한 숲과 험준한 산맥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강렬한 햇살과, „포도주빛 바다“를 번역해낸 것이라고 하겠다. 기후와 자연은 민족의 사유와 감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가 부르는 노래, 먹는 음식, 뒷목에서 허리에 이르는 자세, 우리가 믿는 신은 – 얼마나 지금 서 있는 땅에서 나온 것인가? 
독일 문화를 이해하는데 내게 약간의 장점이랄만한게 있다면, 그것은 분명 언어실력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보다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4년 동안 흑림에서 살았던 것은, 그 전에 15년 동안 아스팔트 위에서 살았던 시간과 대비해서, 엄청난 영향을 가져왔다. 나는 가차없이 얼굴을 바꾸는 날씨와 온도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모든 인공물을 조금 싫어하게 되었다. 독일적 „무거움“을 알고 – 예컨대 검은빵과 버터의 맛 – 그와 쌍으로 태어난 개념인 „남국적 가벼움“ – 예컨대 흰빵과 올리브유 -를 이해했다. 그런 도식 안에 자신을 넣게 되었다는 뜻이다. 음식의 맛으로 균형을 잡는 작업은 니체가 <이사람을 보라>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본래 철학에 속하는 일이다. 공자나 부처도 음식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마지막 부분이 음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음식을 들고 깊은 감사를 올리려 하나, 정작 감사를 받아줄 대상이 없음을 알아차리는, 끔찍한 외로움의 인식 – 이것이 횔덜린으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는 그리움인듯 하다. 혼돈과 힘, 젊음을 노래하려는 횔덜린은 결국 노래 자체를 노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인 내가 그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심장은 요동치는데, 말이 오히려 나오지 않“는 이 현상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음식에 강복을 빌 때, 어느 이름을 부르면 좋으랴, 우리가
매일의 삶을 벗어나 쉼에 들 때, 말해보라, 어떻게 감사를 올리면 좋으랴?
드높은 자의 이름을 부르랴? 신은 명에 걸맞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니,
그를 붙잡기에는, 우리의 희열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우리 침묵해야 할 때가 많으니, 성스러운 이름들이 모자라기에,
심장은 요동치는데, 말이 오히려 나오지 않는다니?
그러나 현금의 가락은 시간마다 음을 빌려주니,
마침 다가오는 천신들을 기쁘게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우리가 염려하는 바는 이미
거의 평화를 얻었으니, 이제 희열의 일부가 되었음이다.
이와같은 염려를, 기쁘던 괴롭던 간에, 영혼에 지녀야 하는 것이
가인의 되풀이되는 숙명이니,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리라.
Wenn wir segnen das Mahl, wen darf ich nennen, und wenn wir
Ruhn vom Leben des Tags, saget, wie bring ich den Dank?
Nenn ich den Hohen dabei? Unschickliches liebet ein Gott nicht,
Ihn zu fassen, ist fast unsere Freude zu klein.
Schweigen müssen wir oft; es fehlen heilige Namen,
Herzen schlagen und doch bleibet die Rede zurück?
Aber ein Saitenspiel leiht jeder Stunde die Töne,
Und erfreuet vielleicht Himmlische, welche sich nahn.
Das bereitet und so ist auch beinahe die Sorge
Schon befriediget, die unter das Freudige kam.
Sorgen, wie diese, muß, gern oder nicht, in der Seele
Tragen ein Sänger und oft, aber die anderen n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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