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에 걸리는 시간

불안하고 자신감 없는 상태에서 이 나라로 돌아왔다. 나는 무얼해야 할지 몰랐고 그것은 올바른 감각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했고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고,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없는 것nichts“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얼하러 온 것이 아니다. 장소와 언어를 바꾸는 것은, 음식과 공기를 바꾸는 것은, 부모와 연인을 바꾸는 것은 의지나 계획과 같은 얄팍한 말로 설명될 수가 없다. 마치 태어나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고 계획에 의거해서 죽음을 준비하는 오만을 우리가 천박함이라고 부르듯이, 언어가 바뀌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언어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준비하거나 노력하거나, 원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다.

언어가 나를 건드리다가, 나를 후려치다가, 나를 넘어지게 하고, 울고 웃게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한 물결이 되어서 내 안을 시원하게 흐른다. 어제 그런 시간을 처음으로 느꼈다. 도서관에 앉아있었는데, 텍스트를 읽는 느낌이 마치 청량한 물이나 술을 들이키는 것 같았다. 마법을 쓰는 것 같았다. 언어를 바꾸는 순간은 항상 마법을 떠올리게 한다. 전에 없던 힘이 나를 관통하는 감각, 단지 생각만으로 물체를, 사람을 움직일 권능을 발견한 감각. 언어를 처음 배웠던 순간, 처음으로 도구를 움켜쥐는 순간에도 사람은 그런 감각에 이끌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럼 감각에 이끌리는 일이 곧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일까?

아무튼 나는 독서를 잊고 있었고, 문자를 언어로 되살리는 법을 잊고 있었다. 나는 특히 부활과 재생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나 말버릇을 그대로 재현해내는게 내가 집중하던 분야였다. 그런데 지금 이 언어, 이 언어로는, 내가 사랑하고 또 견딜 수 없어하는 한국어로는 그 일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모든 흐트러진 것이 바로잡힐 때까지, 아니면 흐트러지게 보려는 마음이 바로 설 때까지, 아니면 그러려는 습관마저도 없어질 때까지, 텍스트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나타난다. 자유자재로, 이렇게 모든 매연과 밤을 피해버렸다. 불과 이주일 전에,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나만 있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게 돌아다녀도, 그렇게 틀어박혀도 얻기 힘든 무언가가, 여기에는 숨만 쉴 줄 아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나는 여기에서 자랐고, 나는 한국말을 말하고,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부류의 공부를 하고, 나는…

나는 최선의 어려움을 찾고 싶다. 낭비되지 않으면서 서두르지 않으면서 길을 천천히 오르고 싶다.

불과 일주일 전보다도 호흡이 길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감사한 일이다.

5 Kommentare zu „도착에 걸리는 시간

    1. 안녕하세요, 아이디로 정체를 유추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흑흑.. 저는 많은 일들과 생각에서 회복 중입니다. 점점 건강해지고 있어요! 전쟁일기, 잊고 있었는데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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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 참 좋습니다, 저는 술이친구가 번역 대신 소설을 써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존댓말로 쓰셔서 저도 그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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