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20170217

글이 풀리지 않아서 도서관 앞 영국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은 영국식englisch이기도 하지만, 천사적engelsch이기도 하다. 프랑스식 공원에 비해서 영국식 공원은 자연의 모습을 본따서 만든다. 모든 것이 자연인데, 자연을 „본따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글을 쓸 수 있는 때가 있고 없는 때가 있다. 일생의 대부분을 글을 쓸수 있는 상태로 보낸 사람들은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마 석사논문때 그렇게 집요하게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 생산 과정을 추적했던 것도 같다, 그도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서).

글을 못쓰고 있을 때의 상황은 대체로 발밑만 보고 걸어 다니는 자세와 비슷하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거나, 멀리 가거나, 힘차게 걷기 위해서 항상 길을 볼 필요는 없다. 가끔만 보거나, 아예 보지 않아도 똑바로 잘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생각이 많아지면 자꾸 고개가 아래로 향한다. 내가 옳게 가고 있는지,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를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옳지 않은 방식의 작업이다.

산책 내내 발 밑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엉망으로 젖은 길을 가고 있었고, 오랜만에 짐 없이, 정처 없이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걷는 일은 헤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익혀두어야 하는 습관이다. 재능 없는 사람을 위한 명상과도 같다. 아무튼 바닥만 보면서 걷고 걷다가, 갑자기 눈을 들었더니 환했다. 우주충한 하늘 속으로 나무들이 걸어들어가고 있었고, 구름을 향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바람을 빨아들이고 있었고… 또 잔디의 푸르름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이 세상에 번져나가고 있었고, 시냇물의 흐름은 세상의 숨소리 처럼, 멈춤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것은 한번도 시작한 적도 없고 멈춘 적도 없다. 곳곳에서 진리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땅만 보고 있었다. 철학자를 원망해라.

조금 마음이 풀려서 글도 잊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데 거위 세마리, 거위 네마리, 거위 여덟마리가 내 앞을 휙, 시야를 낚아채면서 날아갔다. 나도 모르게 „잘 난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스스로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거위는 잘 날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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